[산업] 일본의 파운드리 '라피더스'가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올 수 없는 이유

2023. 3. 1. 18:24반도체 산업

일본이 파운드리 2nm(나노)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하는 이유

 

최근 반도체가 정치, 군사, 안보, 경제 등 다방면에서 중요한 전략 물자로 떠오르면서 세계 주요국들이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 (TSMC, 삼성전자 등) 보다는 설계를 하는 반도체 기업들 (인텔, AMD, 퀄컴 등) 이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설계도 중요하지만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이 반도체 공급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설계를 잘하더라도 결국에 실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반도체 서명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부터 자국 내에 반도체 생산 라인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 특별법과 같은 것으로 비추어 볼 때 반도체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일본에서도 얼마 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기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일본의 주요 대기업과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NTT, NEC, 덴소, 미쓰비시 UFJ 은행 등) 일본 정부가 출자하여 ‘라피더스’라는 파운드리 기업을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라피더스는 미국의 IBM과 파트너 관계를 맺어 ‘25년도까지 2nm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대기업들이 출자하여 설립한 라피더스

 

IBM과 파트너십을 맺은 라피더스

 

 

그런데 과연 파운드리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단기간에 TSMC와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따라잡고 2nm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을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라피더스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며, TSMC와 삼성전자에게도 크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1) 투자비용, 2) 인력, 3) EUV 장비 부족, 4) 양산 문제, 5) 고객사 확보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

 

 

1. 일본은 파운드리 사업에 천문학적인 연구 개발 및 설비 투자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반도체 산업은 장치 산업으로 ‘돈 놓고 돈 먹기’ 식 산업입니다.

 

파운드리 사업의 대표적인 회사인 TSMC와 삼성전자는 매년 수 십조 원을 투자하기 때문에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습니다.

 

아래 도표의 TSMC, 삼성전자, Global Foundries등 주요 기업의 투자 비용을 살펴보면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돈이 없으면 애초에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요 파운드리 회사의 투자 비용

 

 

위 도표를 보면 TSMC와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매년 3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대략 한화로 40~50조 씩 투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외에 첨단 공정이 주력 사업이 아닌 미국의 Global Foundries나 중국의 SMIC, 대만의 UMC도 매년 수 조원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운드리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어 선두주자를 3년 안에 따라잡으려면 매년 수 백조 이상을 때려 넣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라피더스를 설립하면서 각 참여 기업들이 합쳐 고작 70억 엔 (700억)을 모았고, 정부 지원금 700억 엔 (7,000억)을 포함하더라도 한화로 1조도 안 되는 금액입니다. 물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투자도 받고 새로운 부채도 일으키겠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신규 사업에 매년 수 십~수 백조씩 투자할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가 의문입니다.

 

 

 

2. 반도체 엔지니어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1번의 자금 문제는 정부가 어떻게 지원해서 해결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은 돈도 돈이지만 노가다 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반도체 연구와 개발할 엔지니어들을 확보해야 하는데 숙련된 인력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의문입니다.

 

TSMC의 경우 인력이 약 6만 5,000명,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인력이 약 2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TSMC를 따라잡겠다고 하는 삼성전자도 인력 확보에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력을 확보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조차 TSMC 인력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턱 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 쪽으로는 굉장히 기술력이 높고 고급인력이 많다고는 하지만, 단기간에 수 만 명의 인력을 확보하고 교육할 수 있을까요? 투자할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반도체는 고급 인력이 많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단기간에 이런 고급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 선단공정에 필요한 EUV 장비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 자금 문제와 인력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2nm 개발 및 생산을 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EUV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선단 공정에서는 ASML에서 생산하는 EUV가 필수적인데 이 장비는 1년에 생산 Capa가 50~60대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마저도 대부분 TSMC와 삼성전자가 구매하고 있고, 미리 예약이 되어 있어서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ASML의 EUV 장비

삼성전자도 TSMC가 물량을 쓸어가는 바람에 EUV 장비를 확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시장의 신규 진입자가 EUV 장비를 사고 싶다고 쉽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ASML에서 EUV 생산량이 증가한다면 삼성전자는 라피더스보다 그 장비를 먼저 확보할 것입니다.

 

ASML 입장에서도 꾸준히 장비를 구매해 주는 고객사가 필요하지, 계속해서 나의 장비를 구매해 줄지도 모르고, 사업이 망할지도 모르는 신규 사업자에게 기존 메인 고객사를 버리면서까지 판매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라피더스는 TSMC와 삼성전자가 구매하고 남는 장비만을 사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런 물량으로 선단 공정을 연구 및 개발하고 양산까지 할 수 없다고 봅니다.

 

 

 

4. 2nm(나노) 양산에서의 수율 문제

 

라피더스가 2nm 시험 제작에 성공한 IBM과 기술 파트너십을 맺어 양산을 하겠다고 했는데, 시험 제작을 한 것과 양산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IBM은 2nm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기존에 반도체 생산을 해왔던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산에 대한 경험치가 없습니다.

 

양산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 과정을 최적화해야 하며, 수율 또한 안정적으로 나와야 하고, 그 비용이 수익화가 가능한지도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삼성전자도 현재 3nm 개발에 성공하여 양산을 진행하고 있지만, 수율이 매우 낮아 문제가 많은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양품인 3nm 반도체 칩도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성능이 잘 나오지 않는 이슈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고객사 이탈 문제가 발생하였고, TSMC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로 끊임없이 지적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TSMC도 선단 공정 양산에서 수율이 높지는 않다고 합니다.)

 

일본의 현재 기술력은 40nm급으로 TSMC와 삼성전자에 비해 몇 세대는 뒤처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매년 수 십 조씩 파운드리 사업에 쏟아붓고 있는 삼성전자도 3nm에서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사업자가 단기간에 2nm 반도체 양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5. 대형 고객사 확보의 문제

 

파운드리 업계에서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맞춰줄 수 있는 기술력과 더불어 신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일정에 맞추어 원하는 물량을 생산해주어야 하는데, 일정을 못 맞추거나 요구된 성능을 맞추지 못한다면 고객사는 제품을 출시하는데 문제가 생기게 되고,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운드리 업계에서 애플, 퀄컴, 인텔, AMD, 엔비디아와 같은 고객사는 기존 레퍼런스가 있는 기업들을 선호하여 글로벌 칩 메이커들은 주로 TSMC와 삼성전자에게 위탁을 하여 생산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술력이 TSMC에게 밀려 TSMC가 모두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설계와 관련된 이슈가 있지만 이건 다음번에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피더스가 고객사들에게 TSMC와 삼성전자가 아닌 라피더스에게 물량을 맡길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선단공정에서 양산을 성공해 보았다는 경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국, 첫 고객사를 누구를 확보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과연 레퍼런스도 없는 기업에 처음부터 단가가 매우 비싼 첨단 공정 양산을 위탁할 고객사가 누가 있을까요? 아마 첫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부터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본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예전부터 물리, 화학에 있어서 역량이 뛰어났고 인재도 많은 나라입니다.

 

안 되는 이유 100가지가 있더라도 될 수 있는 1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성공했을 때 엄청난 과실을 얻을 수 있다면 도전하는 정신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과거 삼성전자가 처음 메모리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무조건 실패할 거라고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무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사업이 안 되는 이유에만 집중했더라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일본의 파운드리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라피더스라는 회사가 정말 위의 이유처럼 사업이 망할지, 아니면 파운드리 업계에서 제2의 삼성전자처럼 떠오르는 별이 될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